우리는 카메라가 아니라 영화감독처럼 기억합니다
출처: “상대방이 기억을 우기기 시작하면 이 영상을 보여주세요! [뇌과학자가 말하는 기억 왜곡의 진실]” — 장동선의 궁금한 뇌 × 조승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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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확인:
Brewer & Treyens(1981) 사무실 스키마 실험,
Cornell Chronicle(2015)
“우리 여기 전에 왔었잖아.” “아닌데요, 처음인데요.”
식당 문 앞에서 이런 대화, 한 번쯤 해 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럴 때 꽤 당당한 편입니다. 창가 자리, 맛있던 된장찌개까지 또렷하게 떠오르니까요. 그런데 휴대폰 사진첩을 뒤져 보면 가끔은 제 쪽이 틀려 있습니다. 그 또렷함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또렷하다고 다 맞는 건 아니더군요
우리는 기억을 사진처럼 여깁니다. 한 번 찍어 두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그래서 “내 눈으로 봤다”는 말이 제일 힘이 셉니다.
그런데 뇌는 사진을 모으는 앨범보다는 편집실에 가깝다고 합니다. 기억은 꺼낼 때마다 다시 저장되는데, 그 사이에 새로 들은 이야기와 지금의 기분이 슬쩍 섞여 들어간다는 겁니다. 오래전 걷던 골목이 어른이 되어 다시 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평범했다는 이야기가 영상에 나오는데, 기억 속 골목을 그렇게 음산하게 칠한 건 그때의 두려움이었겠지요.
옆 사람의 말이 내 기억이 되는 순간
혼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영상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와 작가 조승연 씨는 몇 가지 실험을 차례로 꺼냅니다.
하나는 ‘스키마’, 쉽게 말해 머릿속에 미리 그려 둔 밑그림입니다. 사무실처럼 꾸민 방을 잠깐 보여 주고 무엇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없던 책을 봤다고 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책장이 있으니 책도 있었겠거니, 뇌가 빈칸을 알아서 채운 겁니다.
또 하나는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연구한 ‘오정보 효과’입니다. 목격자에게 “그 옆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못 보셨어요?” 하고 몇 번 물으면, 나중에는 정말 할머니를 본 것 같다고 말하게 된다는 거지요. 질문 속에 섞인 정보가 원래 기억에 들러붙는 겁니다.
더 뜨끔했던 건 따로 있습니다. 자기 분야를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없는 전문용어를 “들어 봤다”고 답하는 경향이 있었답니다. 많이 읽을수록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도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저도 모르는 걸 아는 척하던 순간들이 몇 개 떠올라 잠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카메라 말고 감독의 의자
이쯤 되면 좀 서늘해집니다. 내 기억이 이렇게 흔들린다면, 기억으로 쌓아 올린 ‘나’는 누구일까요.
장동선 박사는 비유 하나를 바꾸자고 합니다. 우리는 카메라처럼 기억하지 않고 영화감독처럼 기억한다고요. 같은 장면을 찍어도 감독마다 영화가 다르듯, 어떤 장면을 길게 남기고 어떤 장면을 짧게 자를지는 결국 우리가 고른다는 겁니다.
기억 = 그때 본 것 + 그 뒤에 들은 것 + 지금의 기분
그렇게 보니 식당 앞 말다툼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두 감독이 각자 편집한 영화를 틀어 놓고 서로 “원본”이라고 우기는 중인 거지요.
저는 이렇게 해 볼까 합니다
- 누군가와 기억이 엇갈리면 “내가 맞아” 대신 “내 기억엔 그렇게 남아 있네”라고 말해 봅니다. 한 글자 차이인데 싸움은 반으로 줄 것 같습니다.
- 확신이 유난히 강할 때 한 번 의심해 봅니다. 또렷함과 정확함은 서로 다른 것이더군요.
- 아픈 기억은 억지로 묻어 두기보다, 가끔 꺼내 지금의 눈으로 다시 봐 둡니다. 영상에서도 기억을 다시 꺼내 의미를 붙여 저장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좋았던 장면은 조금 길게 편집해 둡니다. 감독 특권이니까요.
그러니 다음에 “우리 여기 왔었잖아”가 나오면 사진첩부터 켜야겠습니다. 감독도 가끔은 원본 필름을 확인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