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남은 필름..

출처: 뇌과학자 장동선 교수 인터뷰 “벌써 세밑…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를까?” (YouTube, 라디오 방송 인터뷰, 2023-12-21 방송분) — 영상 보기
교차 확인: Claudia Hammond의 ‘휴가 역설(Holiday Paradox)’, Scientific American

올해가 벌써 이만큼 지났다니, 달력을 볼 때마다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분명 얼마 전에 새해 인사를 한 것 같은데요. 저는 이걸 나이 탓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자의 설명을 듣고 나니, 탓할 대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시간은 ‘기억’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영상에서 교수님은 비유를 하나 듭니다. 우리 머릿속에는 카메라가 있고, 새로운 일을 만날 때마다 셔터가 눌린다는 것이지요. 1년이 지나고 필름을 돌려 보았을 때 사진이 많으면 “와, 길었다” 싶고, 사진이 몇 장 없으면 “벌써 갔네” 싶다는 겁니다.

바쁘게 살았는데 필름을 열어 보니 텅 비어 있다. 어른의 1년은 그런 모양입니다.

어릴 때는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이라 셔터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바쁘기는 한데 다 아는 일이라 셔터를 누를 이유가 없습니다. 출근하고, 회의하고, 퇴근하고. 저도 “바빠서 시간이 빠른가 보다” 했는데, 대학 시절도 바빴지만 그땐 시간이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는 교수님 말씀에 뜨끔했습니다.

첫 월급은 기억나는데 이번 달 월급은 왜 없을까요

교수님은 월급을 예로 듭니다. 첫 월급날은 생생한데, 매달 25일에 들어오는 월급에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겁니다. 뇌가 이미 “들어올 거야” 하고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예상 못 한 보너스는 확 기쁩니다. 뇌는 예측이 빗나갈 때 더 크게 반응하고, 그런 순간을 ‘기억해 둘 만한 일’로 저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도파민과 시간 감각의 관계는 영상에서도 “여러 이론 중 하나”로 소개됩니다. 정설이라기보다 하나의 설명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여행 연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낯선 곳에서는 하루에 기억할 일이 잔뜩 생기지만, 평소에는 며칠을 살아도 기억에 남는 일이 몇 개 안 된다는 것이지요.

좋은 곳은 아껴 두라는 역설

가장 뜻밖이었던 이야기는 이겁니다. 좋았던 곳에 다시 가면 오히려 감흥이 줄 수 있다는 것. 기억은 꺼낼 때마다 새로 섞여서 저장되기 때문에, 두 번째 방문이 첫 번째의 선명함을 흐릴 수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그래서 제주도를 갈 때 늘 가던 곳 대신 처음 가 보는 동네로 드라이브를 갔더니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뭘 해 볼까요

교수님은 시간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시계가 재는 시간(크로노스)과,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시간(카이로스). 1년을 길게 살고 싶다면 두 번째를 늘리자는 것이지요.

올해 필름이 텅 비었다는 게 조금 서운하지만, 아직 남은 장수가 있으니 오늘 저녁 퇴근길에 셔터를 한 번 눌러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