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제와 “아직”, 그 한 글자 차이
출처: “The power of believing that you can improve” — Carol Dweck, TED · 영상 보기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숫자가 그대로인 걸 보면, 저는 괜히 체중계 쪽을 탓하고 싶어집니다. 어제 계단도 그렇게 열심히 올랐는데 이게 뭔가 싶죠. 사실 작심삼일은 이미 제 특기 목록에 꽤 오래전부터 올라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이번엔 다를 줄 알았거든요. 몸무게 숫자 하나로 제 한 주 전체를 심판하는 셈입니다. 다이어트도, 외국어 공부도, 운동도 비슷합니다. 열심히 하다가 결과가 더딘 날엔 “역시 나는 이런 쪽은 안 되나 보다” 하고 금방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노력은 분명히 했는데, 왜 결과가 더디면 의욕이 더 꺾이는 걸까요.
결과를 판결문처럼 읽는 버릇
생각해 보면 저는 결과를 저라는 사람에 대한 판결문처럼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시험 점수든 체중계 숫자든, 그 한 번의 숫자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증거로 쌓아 올리는 거죠. 돌이켜보면 학교도 회사도 저를 이렇게 길러 놓았습니다. 등급, 순위, 승진처럼 결과 하나로 줄을 세우는 환경에서 자라면, 과정보다 결과만 보는 눈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은 성적표나 인사평가에 잘 남지 않으니까요.
실수 앞에서 뇌가 켜지는 아이들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 교수는 이 지점을 오래 연구했습니다. 열 살 아이들에게 살짝 어려운 문제를 냈더니, 반응이 완전히 둘로 갈렸다고 합니다. 한쪽은 어려운 문제가 좋다며,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눈을 반짝였고, 다른 한쪽은 문제를 자기 지능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주저앉았습니다. 드웩 교수는 앞쪽을 성장 마인드셋, 뒤쪽을 고정 마인드셋이라 불렀습니다. 실제로 실수 앞에서 두 그룹의 뇌 활동을 재 보니, 고정 마인드셋 쪽은 거의 반응이 없었던 반면 성장 마인드셋 쪽은 오히려 더 활발해지면서 실수를 들여다보고 고치려 했다고 합니다.
낙제와 “아직”, 그 한 글자 차이
드웩 교수가 소개한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이 학교는 졸업 기준 과목을 못 채운 학생에게 낙제 대신 “아직(Not Yet)”이라는 성적을 줍니다. 낙제는 그 자리에서 끝이지만, “아직”은 지금 배우는 중이라는 뜻이니 앞으로 갈 길이 남아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한 글자 차이로 같은 결과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드웩 교수는 아이를 칭찬할 때도 “똑똑하다”처럼 재능을 칭찬하기보다 애쓴 과정과 전략, 버텨낸 시간을 칭찬하라고 권합니다. 실제로 노력과 전략을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꺾이지 않았다고 하고요.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다시 체중계 앞에서
이쯤 되니 다시 아침 체중계 생각이 납니다. 숫자가 그대로인 날,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대신 “아직 안 바뀌었네” 하고 한 글자만 바꿔 읽어볼까 합니다. 의지력이 갑자기 넘쳐서가 아니라, 그 한마디가 내일 다시 계단을 오르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모든 결과가 노력만으로 “아직”에서 “완성”으로 바뀌는 건 아닐 겁니다. 그래도 적어도 오늘의 숫자가 저라는 사람 전체를 판결하지는 못한다는 것, 그 정도는 믿어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일 체중계 위에서 또 한 번 억울해하더라도, 그 억울함조차 “아직” 진행 중이라는 증거일 테니,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