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할 일 목록엔 왜 ‘전화하기’가 없었을까요
출처: “What Makes A Good Life? Lessons From The Longest Study On Happiness” — Robert Waldinger, 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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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The Good Life: A Discussion with Dr. Robert Waldinger”
아침에 커피를 내리면서 저는 꽤 진지하게 오늘의 할 일 목록을 세웁니다. 책 10쪽, 스트레칭 10분, 영어 단어 외우기까지 적어 놓고 나면 이상하게 뿌듯해지는데, 이 정도면 거의 무슨 자격시험 준비생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목록을 쭉 훑어보다가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기계발 항목은 한 줄도 안 빠뜨렸는데, “누구한테 전화하기”나 “친구 보러 가기” 같은 줄은 애초에 적어본 적이 없더군요. 사람 만나는 일은 할 일이 아니라, 다른 할 일을 다 끝내고 시간이 남으면 하는 보너스처럼 취급해 온 셈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삶
생각해 보면 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1980~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물었더니, 80% 넘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을, 절반 가까이가 “유명해지는 것”을 꼽았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웃음이 나는 건 저만이 아니겠죠. 저도 비슷한 답을 적었을 것 같으니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더 열심히, 더 많이 성취하라고 등을 밀어붙입니다. 좋은 삶으로 가는 길은 늘 성과표와 통장 잔고 쪽에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75년을 들여다본 사람
그런데 이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린 ‘증거’가 하나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에는 1938년부터 지금까지 75년이 넘도록 724명의 인생을 추적해 온 연구가 있습니다. ‘하버드 성인발달연구’라는 이 프로젝트는 당시 하버드 2학년생들과, 보스턴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난 소년들, 이렇게 두 집단을 나란히 따라가며 해마다 직업과 가정, 건강을 묻고 또 물었습니다. 연구 대상 중 한 명은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다른 누군가는 평생 공장에서 일했고, 또 누군가는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졌습니다. 이 연구의 네 번째 책임자인 로버트 월딩거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선 수행을 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그가 수만 페이지에 이르는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내린 결론은 뜻밖에 단순했습니다. 부도 명예도, 일에 쏟은 노력의 양도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결론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더 정확히는 친구가 몇 명인지, 결혼을 했는지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50세에 자신의 관계에 가장 만족했던 사람들이 80세에 가장 건강했고, 사이가 각별했던 부부는 몸이 아픈 날에도 마음은 그럭저럭 괜찮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사이가 멀어진 관계 속에 있던 사람들은 같은 통증도 몇 배로 크게 느꼈습니다. 심지어 이런 관계는 기억력까지 지켜준다고 합니다.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믿는 80대는 그렇지 않은 80대보다 기억이 더 오래 선명했다니, 투자 대비 효과로 치면 이만한 종목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다시 할 일 목록 앞에서
그래서 저도 오늘 할 일 목록 맨 아래에 줄 하나를 몰래 추가해볼까 합니다. 화면을 들여다보던 시간 중 10분만 떼어 사람에게 전화 걸기, 라고요. 거창한 결심은 아닙니다. 그냥 몇 년째 소식이 끊긴 사람 한 명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보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런 사소한 시도들이 쌓여 노년의 건강까지 좌우한다니, 체크박스 하나 추가하는 수고치고는 꽤 남는 장사 아닐까요. 물론 내일 아침엔 또 깜빡하고 책 10쪽만 채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오늘은 일단 전화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받는 사람이 좀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민망함은 감수할 만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