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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를 게 많아졌는데 왜 덜 만족스러울까요

2026.09.25

고를 게 많아졌는데 왜 덜 만족스러울까요

2026.09.25

출처: “The paradox of choice” — TED,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 — 영상 보기
교차 확인: Iyengar·Huberman·Jiang(2004) 퇴직연금 선택지 연구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켭니다. 볼 게 너무 많습니다.

이것도 재밌어 보이고 저것도 평이 좋습니다. 예고편을 몇 개 넘기다 보면 삼십 분이 훌쩍 지나 있고, 결국 전에 봤던 드라마를 또 틉니다. 고르느라 지쳐서요.

많을수록 좋은 줄 알았는데

선택지가 많으면 좋은 일입니다. 적어도 머리로는 그렇게 압니다. 그런데 마음은 가끔 다르게 반응합니다. 메뉴판이 두꺼운 식당에서 주문하고 나면, 옆 테이블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식이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고를 수 있어야 자유롭고, 자유로워야 행복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마트 진열대도, 휴대폰 요금제도, 보험 상품도 점점 가짓수가 늘어납니다. 누구도 이 전제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공기처럼요.

청바지 한 벌 사러 갔던 교수

미국 스와스모어 대학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이 당연함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가 TED 강연에서 붙인 이름이 ‘선택의 역설’입니다.

그는 청바지 이야기로 이를 설명합니다. 예전에는 청바지가 한 가지뿐이었답니다. 몸에 안 맞고 뻣뻣해서 여러 번 빨아야 겨우 입을 만했지요. 그런데 오랜만에 새 청바지를 사러 갔더니 점원이 묻습니다. 슬림이요, 이지요, 릴랙스드요? 지퍼요, 단추요? 결국 한 시간 동안 이것저것 입어 보고 인생 최고의 청바지를 샀는데, 기분은 오히려 예전보다 못했다고 합니다. 이걸 설명하려고 책 한 권을 썼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웃었습니다.

슈워츠가 짚은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고를 게 너무 많으면 아예 못 고릅니다. 실제로 미국 퇴직연금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 투자 상품이 10개 늘 때마다 가입률이 2%포인트쯤 떨어졌습니다. “내일 정하지” 하다가 그 내일이 오지 않는 거지요. 둘째, 골라도 덜 만족합니다. 고르지 않은 것들이 자꾸 떠올라 아쉬움이 남고, 무엇보다 기대가 높아집니다. 백 가지 중에 하나쯤은 완벽하겠지 싶으니, 좋은 걸 골라도 “완벽하진 않네”가 됩니다.

게다가 한 가지뿐일 때는 실패해도 세상 탓을 하면 됐는데, 백 가지 중에 고른 거라면 탓할 사람이 저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이 제일 뜨끔했습니다.

만족은 뺄셈이었습니다

슈워츠는 농담처럼 말합니다. 행복의 비밀은 낮은 기대에 있다고요.

제 식으로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만족 = 실제로 얻은 것 − 기대했던 것

선택지가 늘면 앞의 숫자도 커지지만, 뒤의 숫자는 더 빨리 커집니다. 그러니 좋은 걸 손에 쥐고도 뺄셈 결과는 초라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게 별로이던 시절에는 반가운 놀라움이라도 있었는데 말이지요.

강연 끝에 그는 어항 속 물고기 그림을 보여 줍니다. 어항을 깨면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실은 막막해진다고요. 누구에게나 적당한 크기의 어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 볼까 합니다

  • 사소한 선택에는 “이 정도면 됐다” 기준을 미리 정해 둡니다. 저녁 드라마는 예고편 세 개까지만 봅니다. 네 번째부터는 제 체력 문제니까요.
  • 이미 고른 것 앞에서는 고르지 않은 것을 떠올리지 않으려 합니다. 식당에서는 옆 테이블을 보지 않는 걸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큰 선택이 아니면 기대를 한 칸 낮춰 봅니다. 기대를 낮추는 건 포기가 아니라, 반가운 놀라움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라고 생각하려고요.

그러니 오늘 밤에는 리모컨을 들고 삼십 분씩 헤매지 말고, 처음 눈에 들어온 걸 그냥 틀어 봐야겠습니다. 재미없으면 뭐, 이번엔 세상 탓을 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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