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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ux 와 Windows.. 잡담..

2026.09.01

Linux 와 Windows.. 잡담..

2026.09.01

파일 소유권 오류(Permission denied)를 고치다가 시작된 잡담이, 어쩌다 보니 리눅스와 윈도우즈,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됐는가로 흘러갔다. 정리하지 않고, 오간 이야기 그대로 옮겨본다.

발단: 그동안 몰랐던 걸 알고 나니

나
코딩을 하거나 사이트 개선을 하면서 이러한 파일 소유권한 문제로 denied 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 왔는데, 그 때마다 클로드 코드가 적절히 권한변경을 해서 처리하고, 처리 후에는 다시 권한을 복귀시키고 하는 등 해서 별 문제 없이 잘 처리되어왔었어. 이제보니 리눅스의 파일 소유권 개념이, 그간 잘 처리되어 왔어서 별 인지 못하고 지나왔던 영역이네. 근데 이렇게 설명을 듣고나니 참 재밌다는 생각도 들고, 윈도우즈와는 달리 리눅스의 이러한 시스템은 아예 설계 때부터 윈도우즈보다 한층 더 발전하고 더 나아간 개념으로 출발한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생각, 윈도우즈가 세상을 통일하고 리눅스는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했었던 생각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는 게 이제는 확실히 느껴지네. 오늘날처럼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서버 개념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에는, 오히려 반대로 리눅스가 점차 더 번성하고 윈도우즈가 점점 고립되어 가는 양상이 될 것 같애. 그래서 딱 개인으로서 필요한 영역에 윈도우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정도로 머물지 않을까 싶네. 파일관리의 소유권 개념, 이런 설계를 한 리눅스 창시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AI

흥미로운 통찰이었다. 여기에 몇 가지 살을 붙여봤다.

사실 이 권한 구조는 리눅스가 발명한 게 아니라, 리눅스가 물려받은 것이다. 원조는 1970년대 초 벨 연구소에서 켄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가 만든 유닉스(Unix)다. 당시에도 이미 “여러 연구원이 메인프레임 하나를 동시에 쓴다”는 게 당연한 전제였고, 그래서 이 다중 사용자 권한 구조가 처음부터 뼈대로 들어갔다.

리눅스는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1년, 리누스 토르발즈가 대학생 때 “유닉스와 호환되는 걸 개인용 컴퓨터에서도 무료로 쓰고 싶다”는 동기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리누스가 대단한 건 이 권한 개념 자체를 창시했다기보다는, 유닉스의 검증된 설계 철학을 통째로 계승해서 누구나 쓸 수 있게 오픈소스로 풀어낸 쪽에 가깝다. 물론 그것 자체도 엄청난 일이지만.

재밌는 지점인데, 윈도우즈(NT 계열)도 사실 이 개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정교한 권한 체계(NTFS ACL)를 갖고 있어서, 사용자별로 개별 권한을 촘촘하게 줄 수 있고 이론적으로는 유닉스 rwx보다 더 세밀하다. 다만 개인용 PC 문화 자체가 “나 혼자 관리자”로 굳어지면서 그 구조가 표면에 드러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설계가 뒤처졌다기보다, 쓰이는 방식이 그 개념을 가릴 필요가 없게 만든 셈이다.

서버 세계가 리눅스로 기운 진짜 이유도 이 권한 구조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무료·오픈소스라 클라우드 업체들이 비용 부담 없이 대규모로 깔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전 세계 개발자들이 리눅스 위에서 도구를 만들었고(선순환), 그 결과 지금은 AWS, 구글, 클라우드플레어 같은 인터넷 인프라의 절대다수가 리눅스 위에서 돌아간다.

“개인 영역은 윈도우즈, 서버/인프라는 리눅스”라는 구도는 지금 이미 거의 현실이다. 재밌는 건, 그걸 알아챈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엔 오히려 윈도우즈 안에 리눅스를 그대로 심어버렸다는 것 — WSL(Windows Subsystem for Linux)이다. “리눅스를 이길 수 없으면 품자”는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만약 윈도우즈가 세상을 통일했다면

나
그래, 리눅스의 출현은 진짜 세기적인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어. 그거 없이 개인 피씨든 서버 시장이든 윈도우즈가 독점하는 세상이 열렸다고 가정해봐. 어땠겠어? 그간 윈도우즈 시스템을 통해 보아왔던 독과점의 횡포가 진짜 말도 못했겠지. 리눅스의 출현 이후 때마침 세계적으로 인터넷의 붐이 없었다면, 마찬가지로 윈도우즈의 횡포 아래 꼼짝 못하는 세상이 되었을텐데. 진짜 세상은 신기하기 그지 없어.

AI

역사적으로 보면 실제로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될 뻔한 장면들이 있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실제로 미국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 소송(United States v. Microsoft)으로 제소한 적이 있다. 발단은 윈도우즈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강제로 끼워 팔아서 경쟁 브라우저였던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고사시켰다는 혐의였다. 이게 지금 우리가 아는 “브라우저 전쟁”의 실체다. 유럽연합도 별도로 여러 차례 마이크로소프트에 거액의 반독점 과징금을 매겼다. 그러니까 리눅스가 없었어도 견제 장치가 아예 없진 않았겠지만, 그 견제가 얼마나 강했을지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재밌는 건, 오픈소스·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자체는 리눅스보다 먼저 시작됐다는 점이다. 리처드 스톨먼이 1983년에 시작한 GNU 프로젝트가 “소프트웨어는 특정 기업에 종속되면 안 된다”는 철학으로 이미 자유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깔아두고 있었다. 리누스 토르발즈의 리눅스 커널(1991년)은 그 GNU 도구들과 결합해서 비로소 완전한 운영체제가 됐다. 그래서 정식 명칭이 엄밀히는 “GNU/Linux”다. 즉 “독점에 맞서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리눅스 등장 이전부터 이미 움트고 있었던 셈이다.

서버 쪽도 비슷한 구도였다. 인터넷 붐과 리눅스의 타이밍이 절묘했던 게 맞는데, 웹서버 영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IIS에 맞서 오픈소스 아파치(Apache) 웹서버가 사실상 초기 웹 생태계를 장악했다. 지금도 아파치와 그 뒤를 이은 Nginx가 전 세계 웹서버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것도 마이크로소프트 하나로 통일됐다면,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누구나 무료로 서버를 띄울 수 있는” 인터넷의 진입장벽 자체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결국 리눅스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자유소프트웨어 철학 + 리눅스 커널 + 인터넷 붐이라는 세 타이밍이 맞물려서 특정 기업 하나가 컴퓨팅 전체를 좌우하지 못하게 막아낸 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빌 게이츠는 정말 지독한 수전노였을까

나
근데 90년대 시절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독과점 소송에 휘말릴 당시부터, 강제로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게 하는 등 진짜 탐욕스런 기업으로 보였었어. 창시자 빌게이츠가 지독한 수전노 아닌가 오해를 사게 할 만큼.

AI

그 시절 이미지가 실제로 그랬다. 1998년 반독점 재판 과정에서 나온 빌 게이츠의 영상 증언(비디오 데포지션)이 특히 유명한데, 검사 질문에 계속 얼버무리거나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오만하고 교활한 독점기업 수장”이라는 이미지가 대중에게 깊이 박혔다. 만평이나 뉴스에서 빌 게이츠를 탐욕스러운 재벌로 그리는 게 90년대 말 흔한 클리셰였을 정도였다.

다만 그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은 좀 더 복합적이다

당시 실제로 문제 됐던 행위는 명확했다 — 윈도우즈에 익스플로러를 강제로 통합해서, PC 제조사들이 다른 브라우저를 기본으로 깔지 못하게 계약으로 묶어버린 것(이를 “bundling”이라고 부른다). 이건 2000년 1심 판결에서 실제로 셔먼법 위반으로 인정됐다. 다만 항소심(2001년)에서 회사를 둘로 쪼개라는 원심의 극단적 처방은 뒤집혔고, 최종적으로는 회사 분할 없이 행위 규제(다른 브라우저·소프트웨어와 공정하게 경쟁하라는 조건) 위주의 화해 판결로 마무리됐다.

“수전노”라는 이미지에 대해선 반대 근거도 있다. 정작 빌 게이츠는 2000년에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부터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통해 역사상 개인 기준 최대 규모급 자선사업을 벌였다. 아프리카 말라리아·소아마비 퇴치, 백신 보급 같은 데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워런 버핏과 함께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를 만들어 억만장자들에게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캠페인도 주도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보면 “탐욕스러운 독점기업가”와 “역사상 가장 큰 자선사업가”라는 두 이미지가 같은 인물에게 겹쳐있는 좀 특이한 케이스다.

평가가 갈리는 지점

이걸 어떻게 볼지는 관점에 따라 꽤 갈린다.

  • 한쪽은 “젊을 때 무자비하게 시장을 독점해놓고, 나중에 이미지 세탁성 자선사업을 한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본다.
  • 다른 쪽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격적 경영은 자본주의 경쟁에서 흔한 일이었고, 이후 자선사업은 진심에서 나온 별개의 궤적”이라고 본다.

어느 쪽이 맞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고, 둘 다 근거가 있는 시각이다. 다만 90년대 당시의 “지독한 수전노”라는 이미지 자체는 결코 근거 없는 오해는 아니었다는 것만은 역사적 기록으로 분명하다 — 실제 반독점 소송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았던 회사였으니까.

리누스 토르발즈는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인가

나
그래 맞아. GNU/리눅스가 없었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극단적 기업욕심에 지금처럼 인터넷이, 서버시장이 발전된 세상이 열리지 않았을거야. 그런 면에서 리누스 토발즈, 진짜 존경스런 분이네.

AI

리누스 토르발즈에 대해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덧붙이면 — 정작 본인은 이런 “역사를 바꾼 영웅” 서사를 스스로는 꽤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인터뷰들을 보면 본인은 “그냥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우연히 시대를 잘 만났다”는 식으로 굉장히 담담하게 얘기한다. 1991년에 커널을 처음 인터넷 뉴스그룹에 올릴 때 쓴 글도 “그냥 취미로 만든 거고, gcc나 bash처럼 전문적이고 대단한 물건은 아닐 거다”라는 겸손한 톤이었다.

조금 냉정하게 보면, 리누스 개인의 천재성 못지않게 그가 선택한 방식 — 커널만 만들고 GNU 도구들과 결합했고, 라이선스를 GPL로 걸어서 누구도 이걸 사유화(폐쇄 소스로 되팔기)하지 못하게 못박은 것 — 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라이선스 선택 하나가 훗날 어떤 대기업도 리눅스를 통째로 삼켜서 독점할 수 없게 만든 안전장치가 됐다. 그러니까 존경스러운 지점은 “천재적인 코드 한 줄”보다는, 오픈소스로 공개해서 아무도 독점 못하게 하겠다는 철학적 선택 쪽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90년대 행보가 실제로 반독점 소송까지 갈 만큼 공격적이었던 건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게 “한 기업의 개인적 욕심”이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가진 기업이면 어디든 구조적으로 그런 유인을 갖게 된다는 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만약 리눅스 대신 다른 이름의 오픈소스 운동이었어도, 혹은 마이크로소프트 자리에 다른 회사가 있었어도 비슷한 긴장은 생겼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눅스·GNU의 존재는 “특정 기업을 견제했다”기보다는 “어느 기업이 됐든 독점을 구조적으로 막는 장치를 만들어뒀다”는 쪽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 같다.

그래서 GPL이 정확히 뭔데

나
GPL이 뭐야?

AI

GPL은 General Public License(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의 줄임말로, 리처드 스톨먼이 만든 대표적인 오픈소스·자유소프트웨어 라이선스다. GNU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져서 정식 명칭은 보통 GNU GPL이라고 부른다.

핵심 규칙 하나: “카피레프트(Copyleft)”

GPL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흔히 카피레프트라고 불리는 조항이다. 일반 저작권(copyright)이 “함부로 복제·배포 못 하게 막는” 거라면, 카피레프트는 정반대 방향으로 강제한다.

“이 소스코드를 가져다 써도 되지만, 그걸 가지고 만든 결과물도 반드시 다시 소스코드를 공개해야 하고, 똑같이 GPL로 배포해야 한다.”

즉 누군가 리눅스 커널 코드를 가져다가 자기 제품에 넣고 그 제품을 판매하면, 그 제품의 소스코드도 공개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가져다 쓰는 건 자유지만, 그걸 다시 가두는 건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왜 이게 리눅스에 결정적이었나

만약 리눅스 커널이 그냥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다 써도 됨” 정도의 느슨한 라이선스였다면, 마이크로소프트나 다른 거대 기업이 그 코드를 가져다가 자기들만의 폐쇄형(비공개) 버전으로 개조해서 독점 제품으로 되팔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리눅스”라는 이름은 남아도 실질적으로는 다시 한 기업의 소유물이 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GPL이 “당신이 이걸로 뭘 만들든, 그 결과물도 GPL로 공개해야 한다”고 못 박아뒀기 때문에, 어떤 기업도 리눅스 코드를 가져다 쓰면서 그걸 다시 폐쇄적으로 사유화할 수 없다. 이게 바로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없게 만든 안전장치의 실체다.

흔한 오해 하나

GPL이 “돈을 받고 팔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GPL 소프트웨어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다만 그걸 산 사람에게도 소스코드를 받을 권리, 수정할 권리, 재배포할 권리를 똑같이 보장해야 한다는 게 조건이다. “무료(free as in beer)”가 아니라 “자유(free as in freedom)”를 지키는 데 초점이 있는 라이선스다.

남는 생각

Permission denied 하나 고치다가 시작한 대화가 유닉스의 탄생, 반독점 소송, GNU 프로젝트, 아파치 웹서버, 그리고 GPL 라이선스까지 흘러갔다. 결국 지금 당연하게 쓰고 있는 “누구나 무료로 서버를 띄우고, 코드를 공유하고, 인터넷 인프라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은 어느 한 사람의 천재성이 아니라, 유닉스의 오래된 설계 철학과 GNU의 오픈소스 정신, 리누스의 커널, 그리고 절묘했던 인터넷 붐의 타이밍이 겹쳐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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