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LOGBOOK

OCEAN LOGBOOK

SSH에서 전화선 모뎀까지..

2026.09.01

SSH에서 전화선 모뎀까지..

2026.09.01

나우누리, 전화선 모뎀의 추억

SSH 터미널에서 Ctrl+C를 눌러도 빠져나와지지 않는 것 같은 착각에서 시작해, where와 which의 차이, SSH라는 이름의 뜻, 그리고 결국 모뎀 시절 전화선 통신 속도의 물리학까지 흘러간 대화. 오간 순서 그대로 옮긴다.

터미널에서 빠져나오는 법: Ctrl+C의 진짜 역할

나
your-user@your-host:~$ ^C가 계속 반복되는데, 여기서 빠져나오는 명령이 뭐야?

AI

화면에 보이는 your-user@your-host:~$ 상태는 이미 정상적인 셸 프롬프트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C(Ctrl+C)를 눌러도 계속 같은 프롬프트만 반복되는 건, 사실 뭔가에 갇혀서 안 빠져나오고 있는 게 아니라 애초에 매번 정상적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입력 중이던 명령어 줄을 취소하고 새 프롬프트를 띄우는 것뿐이라, 아무것도 실행 중이 아닌 상태에서는 눌러도 똑같은 프롬프트만 다시 나온다.

지금 상태에서 SSH 세션 자체를 끝내고 싶다면 exit 또는 logout을 쓰면 된다. 둘 다 현재 셸(SSH 접속)을 종료한다. 키보드로 Ctrl+D를 눌러도 같은 효과다(EOF 신호를 보내서 셸을 끝냄).

참고로 Ctrl+C는 셸 자체를 끝내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실행 중인 프로그램·명령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신호다. 예를 들어 ping google.com처럼 계속 실행되는 명령이 돌고 있을 때 눌러야 그게 멈추고 프롬프트로 돌아온다. 즉 Ctrl+C는 “지금 돌고 있는 걸 멈춰줘”이고, exit·logout·Ctrl+D는 “셸 자체를 닫아줘”라는, 서로 다른 목적의 키다. 프롬프트만 떠 있는 상태에서 Ctrl+C를 눌렀는데 계속 프롬프트만 나온 건, 멈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SSH는 왜 어디서든 접속되는가

나
PS C:\Windows\system32> ssh your-user@your-server-ip -p your-port — 현재 내 위치가 어디든 cmd나 파워셸에서 저렇게 입력하고 비밀번호 치면 SSH로 접속이 되네?

AI

맞다. SSH는 애초에 “지금 내가 어느 폴더에 있는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cd로 파일을 다루는 명령(copy, type, dir 같은 것들)은 현재 폴더를 기준으로 동작해서 위치가 중요하지만, ssh는 로컬 파일이 아니라 네트워크 너머의 다른 컴퓨터에 접속하는 프로그램이다. 명령어 안에 이미 목적지가 다 들어있다.

ssh your-user@your-server-ip -p your-port
     └──┬──┘  └────┬────┘   └┬┘
     접속계정    상대방 IP    포트번호

“your-server-ip이라는 주소의 your-port번 포트로 접속해서 your-user 계정으로 로그인해달라”는 요청이라, 로컬 폴더 위치는 이 요청 내용과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럼 ssh라는 명령어 자체는 왜 어디서든 실행되는가는 별개의 이유다. ssh.exe라는 프로그램 파일 자체가 어디 있는지를 윈도우즈가 매번 찾아야 하는데,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PATH(환경변수)다. 윈도우즈에 ssh가 기본 내장된 이후로는 C:\Windows\System32\OpenSSH\ 같은 경로가 PATH에 등록되어 있어서, 어느 폴더에서 ssh라고 치든 윈도우즈가 그 PATH 목록을 뒤져서 실행 파일을 찾아준다.

즉 두 가지가 겹쳐서 “위치 상관없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명령어 자체(ssh.exe)를 어디서든 찾아서 실행할 수 있게 해주는 PATH, 그리고 접속 대상이 로컬 파일이 아니라 IP 주소로 지정된 원격 서버라서 애초에 “현재 위치” 개념이 필요 없는 SSH의 본질.

where와 which — 같은 질문, 다른 운영체제

나
your-user@your-host:~$ where ssh
-sh: where: command not found

AI

그 프롬프트는 SSH로 접속한 뒤의 리눅스 서버 안이다. where는 윈도우즈(cmd/파워셸) 명령이라 리눅스에는 없다. command not found가 딱 그 이유다.

리눅스에서 같은 걸 확인하려면 which를 쓴다.

which ssh

이게 리눅스에서 where와 같은 역할을 한다 — 이 명령어의 실행 파일이 어디 있는지 찾아주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게 갈린다.

명령어어디서 쓰나뭘 찾나
where ssh윈도우즈 (cmd, PowerShell)ssh.exe 실행 파일 위치
which ssh리눅스/macOS (bash, sh)ssh 실행 파일 위치

PowerShell의 함정: where가 조용히 아무것도 안 한 이유

나
your-user@your-host:~$ which ssh
/bin/ssh
your-user@your-host:~$ exit
logout
Connection to your-server-ip closed.
PS C:\Windows\system32> where ssh
PS C:\Windows\system32>

AI

흥미로운 결과다 — 오류도 안 나고 그냥 아무것도 안 뜬다. 이건 PowerShell이 where라는 이름을 다른 명령으로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다.

cmd(구식 명령 프롬프트)에서는 where가 정말로 “이 프로그램이 어디 있는지 찾아주는” where.exe다. 그런데 PowerShell에서는 where가 Where-Object라는 완전히 다른 명령의 별칭(alias)으로 미리 등록되어 있다. Where-Object는 원래 파이프라인으로 들어온 데이터를 조건에 맞게 걸러내는 필터링 명령이다.

그래서 where ssh라고 치면, PowerShell은 이걸 “ssh”라는 조건으로 Where-Object를 실행하려고 시도하는데, 앞에서 파이프로 넘어온 데이터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에러도 없이 그냥 조용히 아무것도 처리 안 하고 끝나는 것이다.

진짜 where.exe를 쓰고 싶다면 별칭을 무시하고 원래의 where.exe를 직접 부르면 된다.

where.exe ssh

또는 PowerShell 고유의 명령으로 물어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Get-Command ssh

이러면 ssh.exe가 어디 설치돼 있는지 경로와 버전 정보까지 같이 나온다. 지금 어떤 별칭들이 이런 식으로 겹쳐있는지 궁금하면 Get-Alias where로 확인할 수 있다 — where가 실제로 Where-Object를 가리키고 있다는 게 그대로 나온다.

같은 질문, 다른 컴퓨터 — which와 where.exe의 답이 달랐던 이유

나
your-user@your-host:~$ which ssh
/bin/ssh
…
PS C:\Windows\system32> where.exe ssh
C:\Windows\System32\OpenSSH\ssh.exe
which ssh 와 where.exe ssh의 답이 다른 것 같은데?

AI

이 둘은 사실 서로 다른 컴퓨터에서 물어본 질문이라 답이 다른 게 당연하다. which ssh를 쳤을 때는 아직 your-server-ip 리눅스 서버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 서버 안에도 다른 서버로 접속할 수 있는 SSH 클라이언트가 설치돼 있고, 그게 /bin/ssh라는 경로에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 exit로 리눅스 서버에서 완전히 빠져나와서 원래 있던 윈도우즈 PC로 돌아왔고, 거기서 where.exe ssh를 친 것이다. 이건 윈도우즈 PC에 설치된 SSH 프로그램의 위치, C:\Windows\System32\OpenSSH\ssh.exe를 알려준 것이다.

즉 “같은 질문에 다른 답이 나온 것”이 아니라, 윈도우즈 PC에 설치된 ssh와 리눅스 서버에 설치된 ssh는 애초에 서로 다른 프로그램 파일이라 각자 자기 컴퓨터 안에서의 설치 경로를 알려준 것이다. 두 컴퓨터가 각자 독립적으로 SSH 프로그램을 하나씩 갖고 있는 셈이다 — 윈도우즈 PC에서 리눅스 서버로 들어갈 때 쓰는 SSH와, 리눅스 서버 자체에 (혹시 그 서버에서 또 다른 서버로 나갈 일이 있을 때 쓸 수 있게) 미리 깔려있는 SSH, 이렇게 별개다.

SSH라는 이름의 진짜 뜻

나
SSH가 시큐리티 쉘, 즉 보안 접속을 말하는 거잖아?

AI

거의 맞는데 정확히는 Secure Shell이다. “Security”가 아니라 “Secure”(형용사, “안전한”)다 — 미묘하지만 구분해두면 좋은 부분이다.

Shell(쉘)은 리눅스에서 명령을 입력하고 실행하는 “껍데기” 프로그램이다. your-user@your-host:~$ 프롬프트가 뜨는 그게 바로 셸이다. 원래 리눅스·유닉스는 이 셸에 원격으로 접속해서 명령을 내리는 게 흔한 사용법이었다.

Secure(안전한)가 붙은 이유는, SSH가 나오기 전에는 원격 접속용으로 텔넷(Telnet)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건 아이디·비밀번호·명령 내용이 전부 암호화 없이 그대로 네트워크를 타고 오갔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누가 통신을 엿보면(패킷 스니핑) 비밀번호가 그대로 노출됐다. SSH는 이걸 전부 암호화해서 안전하게 만든 버전이다.

그러니까 정확한 뜻은 “보안(security)”이라는 명사가 이름에 들어간 게 아니라 “안전한(secure) 셸(shell)”이라는 형용사+명사 조합이다 — “원격 컴퓨터의 셸에, 안전하게(암호화해서) 접속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텔넷은 요즘도 쓰나

나
요즘도 텔넷을 사용해?

AI

거의 안 쓴다, 특히 원격 로그인 용도로는 사실상 폐기됐다. 텔넷은 아이디·비밀번호를 포함한 모든 통신이 암호화 없이 그대로 오가서, 인터넷 어디든 도청·중간자 공격 위험이 있는 요즘 환경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라, 2000년대 이후로는 서버 관리·원격 접속용으로 텔넷을 쓰는 건 관리를 포기했다는 신호로 여겨질 정도다. 대부분의 리눅스 배포판도 지금은 텔넷 서버를 기본으로 설치조차 안 한다.

다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네트워크 장비(스위치, 라우터, 구형 프린터 등)의 초기 설정·디버깅 단계에서, 부팅 초기에 텔넷 말고는 접속 수단이 없는 구형 장비가 여전히 있다. 흥미롭게도 telnet 명령어 자체는 원격 로그인이 아니라 “특정 포트가 열려있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지금도 종종 쓰인다 — telnet example.com 80이라고 치면 로그인은 안 하지만 그 서버의 80번 포트(웹)가 열려있고 응답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건 텔넷의 “원격 로그인” 기능이 아니라 “TCP 연결을 걸어보는” 성질만 빌려쓰는 것이다. 그 외에 교체 비용이나 호환성 문제로 텔넷만 지원하는 오래된 산업 장비·구형 IoT 기기가 공장이나 인프라 현장에 아직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모뎀 시절에도 텔넷을 썼을까

나
옛날에 전화기에 모뎀으로 인터넷 할 때 텔넷 쓰지 않았나?

AI

맞다. 다만 두 가지가 섞여서 기억되기 쉽다.

모뎀으로 PC통신(천리안, 하이텔 등)에 접속하던 것은 엄밀히는 텔넷이 아니었다. 전화선 모뎀으로 천리안·하이텔 서버에 직접 다이얼업해서 접속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건 인터넷(IP 네트워크)을 거치는 게 아니라 전화망을 통해 그 서비스 서버로 곧장 연결되는 것이었다. 화면에 뜨는 방식이 텔넷과 비슷한 터미널 화면이라 헷갈리기 쉬운데, 원리는 인터넷 프로토콜 텔넷이 아니라 전화선 자체를 통한 직접 접속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된 뒤의 텔넷은 다르다. 집에서 모뎀으로 인터넷(PPP 접속)에 연결한 다음, 그 인터넷 위에서 다른 서버에 텔넷으로 로그인하는 것도 당시 흔했다. 이건 진짜 텔넷 프로토콜이 맞다. 대학 계정으로 학교 서버에 접속해서 이메일 확인하거나, BBS(전자게시판) 서버에 텔넷으로 들어가서 글 읽고 쓰던 게 90년대 인터넷 초창기에 꽤 흔한 사용법이었다.

순수 텔넷은 인터넷이 연결된 다음, 그 위에서 원격 서버에 로그인할 때 쓰던 프로토콜이고, 천리안·하이텔 같은 국내 PC통신은 그와는 별개로 전화선 직결 방식이었다. 다만 사용자 입장에서 체감하는 “터미널 화면”이라는 경험 자체는 둘 다 비슷해서, 지금 와서 보면 하나로 뭉뚱그려 기억되는 게 자연스럽다.

나우누리, 그리고 모뎀 접속음의 향수

나
나 예전에 나우컴에서 나온 나우누리 인터넷 회원이었는데, 초창기 시절 까만 바탕에 글씨로 가득 찼던 나우누리 화면에서 훗날 브라우저에 제법 예쁘게 GUI 갖춘 시절까지, 그때가 참 진짜 재밌었던 거 같아. 채팅도, 속도 엄청 느리지만 이미지 파일 열리는 것도 등등. 전화선 모뎀 피씨통신 시절이 그립다.

AI

나우콤(Nowcom)이 1994년에 시작한 서비스였다 — 천리안·하이텔이 이미 자리 잡은 뒤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서, 상대적으로 젊고 자유분방한 동호회 문화, PC통신 채팅으로 유명해졌다.

그 변천사가 딱 그 시절 모뎀 속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초창기(2400~9600bps)는 정말 텍스트만 화면 가득 채워졌던 시절로, 화면 스크롤도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렸고 한 줄 한 줄 글자가 타이핑되듯 나타나는 걸 보면서 기다렸다. 14.4k~28.8k 모뎀 시대는 그나마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이미지 하나 뜨는 데 위에서부터 한 줄씩 차오르는 걸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56k 모뎀 이후로는 나우누리도 후기에 자체 통신 프로그램으로 그림·이모티콘·버튼 다 갖춘 화면으로 넘어갔다.

그 “삐- 뚜뚜뚜- 치이이익-” 하던 모뎀 접속음, 그리고 그 시절 채팅은 지금처럼 즉각적인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응답이 화면에 올라오는 걸 기다리는 리듬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느린데도 오히려 그 느림 안에서 사람 사이의 대화에 더 몰입했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전화선 하나로 온 가족이 인터넷 쓰면 전화가 안 되던 것도, 부모님이 전화 쓰신다고 모뎀 연결 끊기던 것도 그 시절 특유의 애환이었다.

나
나우콤이라는 회사, 그 뒤로 망한거야?

AI

재밌게도 정반대다 — 나우콤이라는 회사 자체는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 우리가 아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살아남아 있다.

나우누리 서비스와 나우콤(회사)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나우누리 서비스는 1994년 시작해서 약 19년 만인 2013년 1월 31일에 종료됐다. 1990년대 후반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고 야후·다음·네이버 같은 무료 포털사이트가 등장하면서 PC통신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나우누리는 이후 포털사이트 형태로 전환해 명맥을 이어갔지만 결국 사용자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서비스 운영권 자체는 나우콤에서 자회사 나우SNT로 넘어갔다가, 이후 대표가 지분을 모두 인수해 별개 회사가 됐다 — 즉 서비스 종료 시점엔 나우콤 본체가 아니라 이 별도 법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나우콤 본체는 아직도 잘 나가고 있고, 아프리카TV 같은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법인 명칭까지 그대로 이어받아 운영되고 있다. 이후 아프리카TV가 SOOP라는 브랜드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PC통신 회사에서 인터넷 방송 플랫폼으로 업종을 완전히 갈아탄, 꽤 극적인 생존 사례인 셈이다.

다만 사람 쪽으로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나우누리 창립자인 강창훈 전 나우콤 사장이 2023년 7월 17일 뇌졸중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6세였다.

정리하면 — 서비스(나우누리)는 사라졌지만, 회사(나우콤)는 이름을 유지한 채 지금의 SOOP(구 아프리카TV)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화선은 그대로인데 왜 이렇게 빨라졌나

나
그 전화선 모뎀의 연결음, 너무나 향수 가득하고 그리운 소음(?)이야.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때의 전화선을 이용하는데 속도는 왜 이렇게 빨라진거지?

AI

사실 “전화선”이라는 물리적인 구리선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속도가 빨라진 건 선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그 선을 쓰는 방식(기술)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옛날 전화선 모뎀은 인터넷 신호를 사람 목소리가 다니는 주파수 대역(음성 대역, 약 300~3400Hz) 안에 욱여넣어서 보냈다. 전화망 자체가 원래 사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었고, 전화국 교환기들이 그 음성 대역 바깥의 신호는 다 걸러내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좁은 음성 대역 안에만 데이터를 실어야 했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아무리 좋은 모뎀을 만들어도 56kbps가 이론상 한계였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나온 ADSL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핵심 아이디어는 “전화 교환기를 거치지 않고, 구리선 자체가 가진 훨씬 넓은 주파수 대역을 통째로 써버리자”는 것이었다. 전화선은 원래 물리적으로는 음성 대역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수 MHz)까지도 신호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예전 모뎀 시대엔 전화 교환기가 그 위 대역을 다 걸러버렸던 것이고, ADSL은 전화국과 집 사이 구간에서 교환기를 거치지 않는 별도 장비(DSLAM)를 통해 그 넓은 대역을 그대로 활용했다. 그래서 같은 전화선인데도 음성 통화와 인터넷 데이터를 동시에 나눠 쓸 수 있게 됐고, 속도도 수백 kbps~수 Mbps로 뛰었다.

그 뒤로는 VDSL(ADSL보다 더 넓은 대역을 쓰는 버전, 여전히 구리선)을 거쳐, 광케이블(FTTH)로 아예 구리선을 광섬유로 통째로 교체하는 단계까지 왔다. 지금 쓰는 기가인터넷급 속도는 대부분 이쪽이다. 한 줄로 요약하면 — 옛날 모뎀은 전화선의 능력 중 극히 일부(사람 목소리 대역)만 빌려 쓴 것이었고, 그 이후 기술들은 같은 선이 원래 갖고 있던 훨씬 넓은 잠재력을 끄집어 쓰거나, 아예 선 자체를 광섬유로 바꿔버린 것이다.

교환기와 DSLAM — 저역과 고역을 갈라 쓴다는 것

나
예전 모뎀 시절에는 서로 주고받는 신호 자체를 전화교환기가 받아서 건네줄 수 있는 헤르츠 대역 안에서만 보내다 보니 그랬던 거고, 그후 ADSL이 나오고부터는 전화교환기가 아니라 훨씬 높은 대역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별도의 인터넷 자체 고유 변환기를 사용한 거네.

AI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그 “별도의 인터넷 자체 고유 변환기”가 바로 DSLAM(Digital Subscriber Line Access Multiplexer)이라는 장비다. 전화국 안에 이게 따로 설치되면서 구조가 갈라졌다 — 우리 집 전화선은 한 가닥으로 전화국까지 연결되지만, 전화국에 도착하는 지점에서 스플리터(splitter)라는 장치가 신호를 주파수 대역별로 갈라서, 낮은 대역(사람 목소리)은 기존 전화 교환기로 보내고, 높은 대역(데이터)은 DSLAM이라는 새 장비로 보낸다. ADSL 쓰던 시절 전화하면서 동시에 인터넷도 되던 게 바로 이 분리 덕분이었다(다만 초기엔 마이크로필터 안 끼우면 전화 통화 중에 잡음이 섞이곤 했다).

즉 “교환기가 걸러내던 좁은 대역 안에서만 통신 → 교환기를 우회해서 훨씬 넓은 대역을 처리하는 전용 장비(DSLAM)로 전환”, 이게 모뎀에서 ADSL로 넘어가면서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진 핵심 원리다.

56kbps라는 이상한 숫자의 비밀

나
근데 전화교환기를 통하면 왜 이론적 속도한계가 56K야?

AI

56k라는 숫자는 “3.4kHz 대역폭 안에서 최대한 짜낸 값”이 아니라, 전화망 내부가 이미 디지털로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생긴 특이한 한계다.

집 전화선~전화국 구간은 여전히 아날로그다. 이 구간에서 음성 대역(3.4kHz 폭) 안에 잡음 대비 신호를 얼마나 실을 수 있나를 계산하는 게 섀넌-하틀리 정리(Shannon-Hartley theorem)다. 일반적인 전화선 품질로 계산하면 이게 대략 33.6kbps 정도가 나온다. 실제로 그 시절 V.34 모뎀의 최고 속도가 딱 33.6kbps였던 게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56k는 이걸 넘었다. 당시(90년대 중후반) 이미 전화국들 사이의 백본 회선은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로 바뀌어 있었다. 전화국은 사람 목소리를 초당 8000번 샘플링해서 각 샘플을 8비트로 표현하는 방식(PCM, Pulse Code Modulation)으로 디지털화하는데, 이게 8000×8=64,000bps(64kbps)라는 디지털 채널 용량을 만든다.

핵심은 인터넷 서비스 업체(ISP) 쪽은 전화국과 완전히 디지털로 직결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날로그로 변환되는 구간이 딱 한 번, 전화국에서 우리 집까지의 마지막 구간(local loop)뿐이었다. 예전 모뎀 대 모뎀 통신은 양쪽 다 아날로그↔디지털 변환을 두 번 거치면서 잡음이 두 배로 쌓였는데, 56k 모뎀은 ISP 쪽이 이미 디지털이라 한쪽 방향(다운로드)은 이 디지털-아날로그 변환 한 번만 거치면 됐다. 그래서 잡음이 훨씬 덜 끼고, 그 디지털 PCM 채널의 용량(64kbps)에 가깝게, 신호 처리 오버헤드를 뺀 실질 이론치가 56kbps로 정해진 것이다.

업로드 방향(우리 집 → 인터넷)은 반대로, 우리 집 쪽에서 아날로그로 나가는 신호를 전화국이 다시 디지털로 변환해야 했는데, 이 변환 과정은 예전 방식의 제약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33.6kbps 근처의 한계에 계속 묶여 있었다. 그래서 56k 모뎀(V.90/V.92 규격)은 다운로드는 최대 56kbps, 업로드는 33.6~48kbps 정도로 비대칭이었다 — 지금 다운로드가 업로드보다 빠른 인터넷에 익숙한 것도 이 시절부터 이어진 구조적 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주파수 대역폭과 차선 비유

나
그리고 전화교환기가 받는 주파수 대는 저역이고, ADSL 등은 고역의 주파수니까, 즉 주파수 진동이 훨씬 빠르니까 더 많은 정보를 보낼 수 있는거구나?

AI

방향은 정확한데, “진동이 빠르니까 정보가 많다”보다는 조금 더 정밀하게 짚어볼 부분이 있다. 핵심은 주파수 자체의 속도가 아니라, 사용 가능한 대역폭(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정보를 얼마나 실을 수 있는지는 섀넌-하틀리 정리에 따라 대략 “전송 가능한 정보량 ∝ 대역폭(사용 가능한 주파수 범위의 폭) × 신호대잡음비”로 결정된다. 여기서 대역폭이란 단일 주파수 하나가 아니라, 어느 낮은 주파수부터 어느 높은 주파수까지를 쓸 수 있느냐의 범위(폭)를 말한다. 모뎀 시절은 300Hz~3400Hz만 쓸 수 있어서 폭이 3.1kHz였고, ADSL은 대략 25kHz~1.1MHz까지 써서 폭이 약 1MHz — 모뎀 때보다 대역폭이 300배 이상 넓어졌다.

라디오 방송으로 비유하면, AM 라디오는 채널 하나가 차지하는 주파수 폭이 좁고 FM 라디오는 그보다 넓은 폭을 쓴다. 폭이 넓을수록 한 채널에 실을 수 있는 정보(음질)가 더 좋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ADSL은 모뎀이 쓰던 폭 3.1kHz짜리 채널 하나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넓은 대역을 여러 개의 작은 채널(서브캐리어)로 잘게 쪼개서 동시에 수백 개를 병렬로 실어 보내는 방식(DMT, Discrete Multi-Tone)을 쓴다.

정확한 인과관계로 정리하면 — 주파수가 높아서 그 자체로 빠른 게 아니라, 저역대는 전화 교환기가 막아버려서 폭이 3.1kHz로 좁게 갇혀 있었던 반면, 고역대까지 확장해서 쓰니 대역폭(폭)이 훨씬 넓어졌고, 그 넓어진 폭만큼 병렬로 실을 수 있는 정보량이 커진 것이다.

나
전화교환기는 1차선 도로, 고역대는 32차선 도로, 그런 개념?

AI

정확히 그 감각이다. 다만 숫자를 다듬으면, 전화 교환기가 허용하는 저역대(3.4kHz 폭)는 폭 1차선 도로, ADSL이 쓰는 고역대까지의 전체 대역(약 1MHz 폭)은 저역대 대비 폭이 약 300배 넓은 도로다. 3.1kHz에서 약 1.1MHz까지니까, 대략 300차선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그리고 실제로 ADSL의 작동 방식이 이 비유와 정확히 들어맞는다. ADSL은 그 넓어진 대역을 하나의 거대한 도로로 뻥 뚫어서 쓰는 게 아니라, 약 4.3kHz 폭짜리 차선을 200개 넘게 나란히 깔아서 각 차선마다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로 흘려보내는 방식(DMT)을 쓴다. 저역대(교환기가 허용하는 곳)는 폭 1차선짜리 좁은 도로 하나만 뚫려 있던 것이고, ADSL 이후는 그 옆으로 비슷한 폭의 차선들을 200개 넘게 나란히 새로 뚫어서 데이터를 여러 차선에 나눠 동시에 흘려보내는 것이다. “차선이 늘어났다”는 비유가 은유가 아니라 실제 작동 원리 그대로다.

정보량 계산으로 확인해보기

나
주파수 하나에 예를들어 300kHz에 실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1이라 할 때, 320kHz이면 20, 300~3000kHz래봐야 300인데, 고역대는 MHz 단위로 가서 폭이 넓어지면 300,000 또는 3,000,000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봐도 되나?

AI

좋은 직관인데, 단위 하나가 살짝 어긋나 있어서 바로잡으면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전화 음성 대역은 300kHz~3400kHz가 아니라 300Hz~3400Hz다 — kHz가 아니라 Hz 단위 그 자체다. 저역대(음성 대역)는 300Hz~3400Hz로 폭이 약 3,100Hz(3.1kHz)이고, ADSL이 쓰는 고역대는 약 25,000Hz~1,100,000Hz(25kHz~1.1MHz)로 폭이 약 1,075,000Hz(1.075MHz)다.

“1kHz(=1000Hz)의 폭에 실을 수 있는 정보량을 1이라 하자”는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면, 저역대(음성 대역)는 폭 약 3.1kHz라서 정보량 약 3.1, 고역대(ADSL)는 폭 약 1,075kHz라서 정보량 약 1,075다. 비율로 보면 약 350배 — 이게 실제로 모뎀(33.6~56kbps)과 ADSL(수백 kbps~수십 Mbps) 사이의 속도 차이 배율과 대략 맞아떨어진다.

“폭이 kHz에서 MHz로 넘어가면 정보량도 수십만~수백만 단위로 커진다”는 감각 자체는 정확하다. 다만 처음 예시의 “300kHz~3000kHz”라는 부분이, 실제로는 “300Hz~3400Hz”였던 것이라 자릿수가 1000배 정도 낮게 잡혀 있었던 것뿐이다.

엄밀히는 폭에 정확히 정비례는 아니고, 섀넌 정리에서는 폭(B) × log₂(1+신호대잡음비) 형태라서 잡음 조건에 따라 살짝 보정이 들어간다. 다만 같은 전화선, 비슷한 잡음 환경이라고 가정하면 log 항은 거의 일정하게 취급해도 되니까, “폭이 커지면 정보량도 거의 그 비율만큼 커진다”는 근사 모델은 실용적으로 충분히 정확한 이해다.

남는 생각

Ctrl+C 하나에서 시작한 질문이 where와 which의 차이, PowerShell의 별칭 함정, SSH라는 이름의 어원, 텔넷의 흥망, 나우누리의 추억, 그리고 결국 섀넌-하틀리 정리와 DSLAM까지 흘러갔다. 결국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빠른 인터넷도, 전화선이라는 같은 물리적 매질을 두고 “이걸 어떻게 더 똑똑하게 쓸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였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 기록은 여기까지지만,
생각은 아직 이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