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요
출처: “The Keys to Forgiving the Unforgivable” — Everett Worthington, TEDxYouth@R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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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r Good Science Center 기사 ·
Everett Worthington 공식 페이지
오래전에 저를 서운하게 했던 사람 이름이 어쩌다 대화 중에 툭 튀어나오면, 저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바뀌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분명 다 지난 일이고 웃으며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구석에 눌러놓은 스위치가 아직 살아있었던 거죠. 저는 이걸 속으로 ‘마음의 임플란트’라고 부릅니다. 평소엔 멀쩡하다가 꾹 누르면 여전히 욱신거리는.
“이제 그만 용서하고 넘어가자”고 다짐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다짐’과 ‘진짜 편안해짐’ 사이에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거리가 있더군요. 그 간극의 정체를 최근에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왜 결심만으로는 마음이 안 풀릴까
곰곰이 따져보니 제가 헷갈렸던 건 용서를 한 가지 일로 뭉뚱그려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에버렛 워싱턴은 이걸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결정적 용서’로, 상대에게 더는 복수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으로 대하겠다는 의지의 영역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정적 용서’인데, 분노나 원망 같은 감정이 실제로 공감과 연민 같은 감정으로 바뀌는 쪽입니다. 저는 늘 전자만 해놓고 후자가 저절로 따라오길 기다렸던 셈입니다. 의지로 결심은 할 수 있어도, 감정은 의지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던 거죠.
꽁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독하게 잊지 않겠다”는 말을 꽤 멋지게 포장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몸은 그 멋짐을 별로 반기지 않는 모양입니다. 워싱턴에 따르면 원한을 품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압과 면역력, 심지어 수면의 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꽁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너무 오래 긴장 상태를 유지해온 결과에 가깝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용서는 상대를 위한 선심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긴장에서 꺼내주는 꽤 실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어머니를 잃은 심리학자가 발견한 다섯 글자
이 강연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워싱턴 교수가 그냥 책상에서 이론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강도에게 목숨을 잃은 당사자였고, 그 상실을 끌어안고 평생 용서를 연구했습니다. 강연에는 또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 납치되어 큰 상해를 입었던 크리스 캐리어라는 사람이 22년 뒤 자신을 해친 사람을 직접 찾아가 용서한 이야기입니다. 그 용서는 두루뭉술한 선언이 아니라, 상대의 사과와 뉘우침을 보고, 공감하고, 끝내 가족 앞에서 다짐을 지켜낸 구체적인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REACH라는 다섯 글자 공식
워싱턴은 이 과정을 연구를 거쳐 REACH라는 다섯 단계로 정리했습니다.
- 기억하기(Recall) —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떠올리기
- 공감하기(Empathize) —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헤아려보기
- 이타적 선물(Altruistic gift) — 받을 자격이 없어도 내어주기
- 다짐하기(Commit) — 그 마음을 붙잡아두기로 하기
- 지켜내기(Hold) — 의심이 들 때도 놓지 않기
중국, 콜롬비아, 르완다 등 여러 나라에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이 방식을 실험했더니 우울감과 불안이 줄고 삶의 만족감이 늘었다는 결과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오늘 아침
그래서 저는 요즘 누군가의 이름에 마음이 욱신거릴 때, “용서해야지”라고 뭉뚱그려 다짐하는 대신 딱 한 단계만 해보려 합니다. 오늘은 그냥 그 일을 외면하지 않고 한 번 제대로 떠올려 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요. 다섯 글자를 다 채우지 않아도, 첫 글자 하나만 떼어봐도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마음의 임플란트도 매일 누르다 보면 언젠가 무뎌지는 날이 오려나, 하는 기대를 슬쩍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