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어드렸는데, 왜 민망해졌을까요
출처: “A Formula for Kindness” — Lorraine Dickey, TEDxLehighRiverStud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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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확인:
William Hamrick, *Kindness and the Good Society* ·
Houston Kraft, *Deep Kindness* 요약
마트에서 짐이 많아 보이는 분을 보면 저도 모르게 문 쪽으로 손이 먼저 나갑니다. 그런데 가끔은 문을 열어드렸는데 상대가 “아, 네… 감사합니다” 하고 묘하게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좋은 마음으로 한 건데 분위기가 살짝 떠 버리는 느낌.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최근 본 강연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친절을 베풀고도 머쓱해지는 순간은, 알고 보면 상대에게 “물어보지 않고” 행동했을 때 생긴다고 합니다. 돕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어도, 상대가 그 도움을 받을지 말지 고를 틈을 주지 않으면 친절은 반쪽짜리가 되어 버립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누군가를 도울 때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기보다 먼저 손을 써 버리는 쪽이었습니다. 빠르게 해치우는 게 친절이라 믿었던 셈인데, 상대 입장에서는 선택권을 뺏긴 셈이 될 수도 있는 거였습니다.
여기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사회가 오랫동안 독립과 자립을 미덕으로 치켜세우면서, 친절을 베푸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은근히 약해 보이게 만들어 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친절을 입 밖으로 꺼내면 괜히 감성적이고 순진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머뭇거리게 되는 분위기, 다들 한 번쯘은 느껴 보셨을 겁니다.
문을 열다가 깨달은 의사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로레인 디키라는 미국의 중환자실 의사입니다. 한창 일하던 마흔 즈음, 스키를 타다 크게 다쳐 뇌를 다치고 거의 3년을 쉬어야 했습니다. 복귀 후 그가 깨달은 건, 의료 기술이 뛰어나도 환자가 “돌봄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건 결국 친절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휠체어를 탄 신사를 위해 문을 열어준 경험을 예로 듭니다. 당연히 고마워할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는 “저 혼자 해보려던 참이었어요”라며 뜨뜻미지근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바로 “물어보지 않고 행동한” 그 지점이었던 겁니다.
친절을 자꾸 미루게 되는 이유도 셋으로 정리합니다. 도와줄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무능감, 괜히 나섰다가 무안당할까 걱정하는 불안감, 지금은 바쁘다는 불편함. 영어로는 세 단어 모두 ‘in-‘으로 시작해서 한 세트로 외우기 쉽다고 합니다. 저부터도 길에서 누군가 곤란해 보여도 “내가 끼어들 상황인가, 번거롭지 않을까” 망설이다 그냥 지나친 적이 적지 않습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흥미로운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친절일 때도 있다는 대목입니다. 그는 이걸 ‘침묵의 친절’이라 부릅니다. 누군가의 농담이 썰렁해도 굳이 지적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것, 힘들어하는 사람 곁에 그저 가만히 있어 주는 것도 친절의 한 모습이라는 겁니다. 말도 행동도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상대는 분명 더 편안함을 느꼈을 테니까요.
다시 마트 문 앞에서
이제는 문을 잡아드리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여 볼까 합니다. “도와드릴까요?” 그 한마디가 조금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상대에게 선택할 틈을 주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꽤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묻는 쪽이 안 묻는 쪽보다는 나을 겁니다. 다음에 문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물어보기부터 해 볼 생각입니다. 머쓱해질 각오는 여전히 좀 남아 있지만요.